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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복

호학당 이야기/책과 밑줄

by 호학당 2021. 10. 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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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복

데릭 청, 에릭 브랙 지음

홍성완 옮김

지식의날개

 


 

 

 

p.327-328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스탠퍼드의 학부생이었던 나는 운 좋게도 쇼클리 교수가 가르치는 수업을 세 과목이나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인상은 대단히 명석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지닌, 그러면서도 강한 경쟁 본능에 이끌렸던 사람이었다. 그는 절대 학생들 앞에서 잘난 체하지 않았다. 강의에는 항상 이례적으로 진지했고 수업을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공부했던 교재는 그의 1950년도 명저인 『반도체의 전자와 양공』이었다. 강의 중에 쇼클리는 주제에 대한 개념적인 이해, 머릿속에 그림 그리기, 그리고 솔루션에 이르는 데 필요한 노력과 비용의 추정치를 빨리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많은 과학자들과 달리 그는 개념을 표현하고, 계량적인 가치를 끌어내는 데 수학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리고 개념적인 솔루션과 그 개발을 위한 추정치가 나온 다음에 상세한 공학적 설계에 수학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쇼클리는 활기찬 정신을 가졌고, 고정관념을 벗어난 가능성을 즐겨 찾았다. 복잡한 문제를 풀 때는 먼저 그것을 일련의 단순한 문제들로 나누고, 그 중 가장 간단한 문제부터 먼저 공략하여 답을 이끌어 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즉시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자주 강조했다. 오랫동안 열심히 연구를 했는데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뒤로 물러나서 모든 기본적 요소들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시험 기간에 아무도 풀 수 없는 양자역학 문제가 나와 모두가 당혹해했던 사건이다. 나중에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쇼클리는 한바탕 크게 웃고는 말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내가 제시한 경계 조건들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나?” 그제야 우리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문제 자체가 옳게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없네!” 아마 우리가 쇼클리처럼 넓게 생각하는 것을 배우지 못해서 그랬을 수 있다. 아니면 모두가 그처럼 권위 있는 사람에게 겁을 먹어 그가 제시한 프레임워크에 감히 의문을 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항상 문제가 타당한지 먼저 물어보라는 것과, 모든 힘을 쏟아 문제를 공략하기 전에 그 정의를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아주 소중한 교훈이었다.

쇼클리는 자신도 인정했듯이 시장에서는 실패했지만 억울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가끔 강의 중에 벨 연구소에서의 지난날들에 대해 한두 마디 이야기는 했지만 절대 우생학이나 ‘8인의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비판적인 사고법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특히 ‘생각하려는 의지’와 ‘창조적 실패’를 극찬했다. ‘생각하려는 의지’는 1947년 연말에 2주간을 호텔 방 안에 칩거하면서 접합 트랜지스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을 예로 들었다. ‘창조적 실패’로서는 바딘과 브래튼의 점접촉 트랜지스터의 예를 가장 좋아했다. 비록 그 장비가 시장에서 실패하기는 했지만 더 나은 접합 트랜지스터의 발명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 실패는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사고방식만 바르다면 창조적 실패야말로 성공을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쇼클리의 반도체 연구소가 도산한 사실 자체도 ‘창조적 실패’의 표본이 되어 실리콘밸리의 엄청난 성공을 낳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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