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 지음
박철홍 옮김
나남
p.47 - 48
공간에서의 움직임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공간에서의 움직임은 예를 들면, '위로 또는 아래로' 하는 방향을 지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것도 함께 들어 있다. '가까운 또는 먼'이라는 말은 풍부한 질성적 의미를 지닌 말이다. 그것은 꽉 조이는 또는 느슨한, 줄어드는 또는 팽창하는, 합쳐지는 또는 분리되는, 향상되는 또는 타락하는, 올라가는 또는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서성이면서 곰곰이 생각하는 또는 분산되고 산만한, 영향력 있는 강함 또는 별 영향력이 없는 약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직접 경험될 때 갖게 되는 질성이지 과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과 반응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이나 사건을 구성하는 것들이다.
과학은 실제 경험에 있는 것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일어나는 '조건', 즉 멀리 떨어진 사물들의 관계나 동일하게 반복되는 사태에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반복되는 행동과 반응은 수학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관계로 환원될 수 있으며, 그때 그러한 행동과 반응은 과학적으로 언급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삶의 사태에서 행동과 반응이나 사물들 간의 관계는 한없이 다양하고 복잡해서 일일이 말로 언급할 수 없다. 예술작품에서는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뿐이다. 예술은 일상적 삶의 사태에서 경험된 것들 중에서 관련이 없는 것들은 제외하면서 의미가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의미 있는 것들을 압축하고 강화한다.
예를 들면, 음악은 깊은 우울함과 고양된 상승감, 갑작스런 밀려옴과 빠져나감, 촉진과 저지, 조임과 느슨함과 같은 사태의 본질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직접 전달한다. 예술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는 표현은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는 추상적이다. 그렇지만 그 표현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강렬한 것이다. 만일 예술이 없다면 경험의 부피, 무게, 모습, 거리와 방향이라는 질성적 변화에 대한 인간의 지각과 표현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며, 경험에 대한 파악은 매우 희미한 상태에 남아 있어서 분명한 의사소통을 거의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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