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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호학당 이야기/책과 밑줄

by 호학당 2021. 8. 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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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p.217-218, p.170-175

코스트코에서 남다른 경로를 개척해온 직원의 한 예를 들자면 아네트 알바레즈 피터스(Annette Alvarez-Peters)를 꼽을 만하다. 그녀는 전문대학 몇 학기를 다니다가 21세에 샌디에이고 매장 회계부의 회계감사 직원으로 코스트코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그 뒤 판촉 부문으로 옮겨 가 고객 응대, 행정 보조, 물품 재정리직 등을 거쳐 구매 업무 보조직을 맡으며 블랭크 미디어(플로피 디스켓과 공테이프) 부문과 전자 통신(전화기와 휴대전화) 부문을 담당하게 됐다. 이때 구매 업무에서 소질을 발휘하면서 전자 제품 구매자로 승진했고 이어서 로스앤젤레스 지점의 주류 구매자로 일하게 됐다. 그러다 2005년에는 마침내 현재의 직위에 올라 코스트코의 모든 와인과 맥주를 포함한 주류 구매를 총괄 책임지고 있다. 이 직위는 워낙 영향력이 막강한 자리라 그녀는 <디켄터(Decanter)>에서 선정하는 전 세계 와인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명단인 ‘디켄터 파워 리스트’에 4위로 등극하기까지 했다.

마시멜로 실험과 자제력이 성공의 열쇠라는 식의 그 실험 결론이 드러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본질주의 사고에 크게 구속돼 있는 한 영역, 즉 능력, 재능, 잠재력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우리는 이런 자질들을 본질적 자질이라고 여긴다. 개개인별로 이런 자질을 가진 사람도 있고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환경은 재능 같은 것에 미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 재능을 좌우하지도 재능을 싹틔우지도 못한다고 말이다.

이런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는 바로 직원 채용 방식이다. 직무의 최적임자를 찾는 문제에 관한 한 기업계의 모든 시스템은 맥락을 무시하도록 짜여 있으며 그 초반 과정부터 지극히 본질주의적인 채용 도구를 내세운다. 이는 채용 공고 시 요구하는 직무 설명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케팅 책임자의 직무에 대한 전형적인 직무 설명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식의 ‘필수 자격’이나 ‘필수 기량’ 항목이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마케팅 및 영업 부서에서 10년 이상 일한 경력자에 한함 학사 학위 소지 필수, 석사 학위 취득자 우대함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 리더십에 뛰어난 소질을 반드시 갖춰야 함 반드시 멀티채널 마케팅과 제휴 프로그램 관리 분야에 능통할 것

매주 수십만 곳의 기업들이 비어 있는 일자리에 지원자를 모집하기 위해 비슷비슷한 초안의 직무 설명서를 게시하고 있다. 채용 담당자들은 고용주가 기대하는 경력, 기량, 자격증 등을 쭉 열거해 게시했다가 이 기준에 미달하는 지원자들을 걸러낸 뒤 나머지 지원자들 가운데 최적인 사람을 뽑는다. 이는 언뜻 생각하면 상식적인 방법 같다. 지원자들은 사람에 따라 특정 기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커뮤니케이션 능통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며, 멀티채널 마케팅 같은 분야의 ‘실력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 그것이 상식적인 직원 선발 방법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물론 이런 방법에서의 오류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본질주의 사고에 속아왔기 때문이다.

맥락의 원칙에 따르면 직원의 ‘본질’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직원이 수행해야 할 직무의 수행력과 그 직무 수행이 행해질 맥락에 주목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실제로 그런 방법을 개척해낸 인물이 있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채용 컨설팅사인 루 애들러 그룹(Lou Adler Group)의 창설자 루 애들러다.

애들러는 직장을 맥락 중심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착안해 그 자신의 표현처럼 ‘수행력 기반의 채용’이라는 새로운 직원 채용법을 개발했다. 그는 고용주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수행되기를 바라는 직무에 대해 우선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했다. “기업들은 하나같이 커뮤니케이션 능통자가 필요하다는 말들을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직무 설명서에 가장 흔히 기재돼 있는 기량이죠. 하지만 다방면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능통자’ 같은 건 없습니다. 특정 직무에 필요할 만한 여러 종류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것이지, 그 모든 방면에서 능통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 서비스 담장자의 경우라면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고객의 문제를 이해할 만한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회계사에게는 고위 임원에게 영업 적자가 수익에 끼치는 영향을 잘 설명하는 능력일 것이다. 애들러는 ‘뛰어난 커뮤니케이션’의 수행을 위해서는 이러한 맥락적 세부 사항들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애들러 그룹의 의뢰인 중에는 수행력 중심의 채용이 자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한 인물이 있는데, 런던에 기반을 둔 렛츠고 홀딩스의 창업주로서 25세의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일군 캘럼 니거스 팬시(Callum Negus-Fancey)다. 렛츠고 홀딩스로 말하자면 매스컴 및 IT 기업의 ‘브랜드 고취 전문 기업’으로서 빠르게 명성을 쌓으며 창업 3년만에 급성장세에 올라섰다.

캘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는 초반엔 채용 문제를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지 잘 몰라서 전통적인 직무 설명서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마케팅 팀을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을 때도 일반적인 직무 설명서에 들어맞는 사람을 채용했죠. 그 직원은 화려한 경력을 쌓은 인재였지만 대기업에서 일을 해온 사람이라 성장 속도가 빠른 신생 벤처기업이던 우리 회사와는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았습니다. 정말 말도 못하게 안 맞았어요.”

바로 그 무렵 캘럼은 수행력 중심의 채용에 대한 얘기를 듣고 애들러에게 새로운 인사채용 담장자 선발에 도움을 달라고 청했다. “애들러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일은 렛츠고와 유사한 맥락에서 뛰어난 수행력을 펼칠 만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에서의 애들러 모델의 채택은 아주 반직관적인 전망에 따르는 결과로 귀결돼, 벨기에 출신의 한 약사가 선발됐다. 캘럼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티에리 틸렌스는 영국인도 아니었고 인사 관리 경력이 전무했습니다.” 캘럼도 처음엔 미덥지가 않았으나 애들러가 채용의 근거를 설명해줬다고 한다. 이 약사가 이전에 보여준 수행력으로 보나 일을 해왔던 조건들(이를테면 일련의 새로운 상황을 겪으면서 바뀌는 직원들을 다루는 요령을 빠르게 습득하는 등의 사례)로 미뤄 볼 때 렛츠고에서 필요한 직무 여건에 거의 일치한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결국 캘럼은 그를 채용했다. “현재 그 직원은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로 손꼽을 정도로 일을 잘합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직무 설명서를 들여다보며 직원을 뽑았더라면 이런 인재를 거들떠도 안 봤을 겁니다.”

인사관리업은 테일러주의에서 탄생했고, 인사부에 맡겨진 업무는 평균적 직무를 충족할 평균적 직원들의 물색이었다. 처음부터 본질주의 사고가 그 사고방식의 근본을 이뤘으며 이 점은 현재도 여러 면에서 변함이 없다. 이 대목에서 애들러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기업들은 하나같이 인재가 부족하다고,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다고들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고의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일 뿐입니다. 직무의 맥락적 세부 사항을 통해 생각하려고 애쓰다보면 결국엔 애쓴 보람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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