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그랜트 지음
이경식 옮김
한국경제신문
p.360 - 366
“너는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니?”
내가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어른들과 대화하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그것을 마땅찮게 여겼다.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는 (기분 나쁘게도!) 껄껄거리며 웃었다. 슈퍼히어로 다음으로 세웠던 목표는 NBA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농구 골대에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슛을 쏘며 연습했지만 중학교 농구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도 3년 연속으로 퇴짜를 맞았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 게 분명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스프링보드 다이빙에 푹 빠져서 다이빙 코치가 되고 싶다고 마음을 정했다. 어른들은 나의 이 계획에 콧방귀를 뀌었다.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았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때는 심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지만, 그곳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문이 내 앞에서 닫혀버렸다. 나는 심리치료사가 되고 싶지도 않고 정신과 의사도 되고 싶지 않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목표가 없었고 장래 희망과 계획을 분명히 세운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나의 사촌동생 라이언은 유치원 시절부터 자신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에게 의사가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는 의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온 가족의 소망이었다. 우리의 증조부모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했고, 할머니는 비서로 일했고 할아버지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해도 다섯 아이를 키우기 버거웠기에 할아버지는 부업을 시작했다. 우유 배달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우유 트럭 운전하는 법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새벽 4시에 시작하는 우유 배달을 학교 가기 전에, 그리고 할아버지가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끝냈다. 자식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의과대학에 가지 않았을 때, 혹은 우유 배달일을 하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소망은 손자 세대에서라도 그랜트 집안에서 의학 박사가 나오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았다.
나이순으로 처음 일곱 명의 손주 가운데서는 의사가 없었다. 나는 여덟 번째였는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최대한 많은 선택권을 확보하려고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두 분은 내가 심리학 박사 학위를 따자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여전히 손주들 가운데서 진짜 ‘닥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홉 번째 손자이자 나보다 네 살 아래인 라이언은 의사라는 운명의 길을 가도록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라이언은 모든 요구 사항을 충족했다. 조숙했던 그는 강력한 노동 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열정을 품었으며,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더라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라이언은 진학할 대학교를 여기저기 살필 무렵에 나를 찾아왔다. 무엇을 전공할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일찌감치 정해두었던 경로에 약간의 의문을 드러내면서 경제학을 전공하면 어떨까 하고 물었다. 라이언의 이런 특성을 표현하는 심리학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경박함(blirtatiousness)이다. 이 용어는 실제 있는 연구 개념으로 ‘불쑥 내뱉기(blurting)’와 ‘희롱하기(flirting)’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조급한 모습과 야단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전형적으로 외향성과 충동성 점수가 높으며 부끄러움과 신경질 점수는 낮다. 라이언은 자기 자신을 채찍질해서 오랜 시간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지만, 그러다가 결국 지쳐버렸다. 그는 보다 활동적이며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어떤 것에 이끌려서 의학을 전공하면서도 짬을 내서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의예과에 진학하면서는 그 생각을 버렸다.
그래, 가던 길을 계속 가야지…
라이언은 의예과 과정을 잘 다녔으며 학부생이면서도 다른 학부생을 지도하는 강의 조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시험 대비 정리 시간에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강의실에 들어간 라이언은 스트레스에 찌든 학생들을 보았다. 그는 강의를 진행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비리그 의과대학 입학 허가를 받았을 때는 나를 찾아와서 아무래도 의과대학과 MBA를 결합한 과정을 밟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경영학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여러 개로 쪼개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 가던 길을 계속 가야지…
의과대학 마지막 학년이 되었을 때 라이언은 신경외과 레지던트에 지원했다. 다른 사람의 뇌를 얇게 썰어낼 수 있으려면 고도로 집중된 뇌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는 그런 일에 자기가 잘 맞을지, 혹은 그 일이 자기가 인생을 즐길 여유를 조금이라도 남겨줄지 확신이 없었다. 의료 관련 회사를 창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예일대학교 병원에서 레지던트 합격 통보를 받고 나자 그 자리를 선택했다.
그래, 가던 길을 계속 가야지…
레지던트로 일하는 시간은 너무도 힘들었다. 늘 극도로 집중해야 했던 터라 마침내 라이언은 나가떨어졌다. 자기가 그날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병원 직원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아니어 심지어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치리지도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는 죽어가는 환자를 시시때때로 바라보면서 아픔을 느꼈고 혹독하게 몰아대는 담당 의사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다. 게다가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그야말로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비록 의사가 되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꿈이긴 했지만, 그가 하는 일은 그 일 이외의 다른 일을 할 시간적인 여유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그는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 시달렸다.
그러나 라이언은 도중에 포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로를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7년 동안의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그런데 자격증을 신청하려고 제출한 서류에 문제가 생겼다. 이력서 왼쪽에 날짜를 적어야 하는데 오른쪽에 적었다는 이유로 병원 행정 부서에서 접수를 거부한 것이다. 라이언은 이런 형식적인 일 처리 체계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날짜 위치를 옮기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정해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더나 그는 관료들을 상대로 그 싸움에서 이겼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최소침습척추수술(MISS) 분야에서 펠로십을 8년 차에 거침으로써 또 하나의 영예로운 성취를 이루었다.
지금 라이언은 누구나 아는 큰 병원에서 신경외과 의사로 일한다. 30대 중반인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지 10년도 더 되었지만 아직도 학자금 대출을 다 갚지 못했다. 비록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즐기고는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 들었던 긴 시간과 요식적인 절차가 그의 열정을 갉아먹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른 진로를 선택하겠다고까지 말한다. 라이언에게 자기가 내린 진로 결정을 다시 생각하도록 설득하려면 무엇이 필요했을지, 그리고 라이언이 자기 직업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종종 생각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기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름대로 생각한다. 직업적인 경력에 국한되지 않는 문제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살 것인지, 어떤 학교에 다닐 것인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지, 아이는 몇이나 낳을 것인지 등을 생각한다. 이런 생각과 관련된 이미지들은 우리를 자극해서 한층 대담한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런데 이런 계획들은 우리에게 터널시야(tunnel vision, 터널 안에서 밝은 빛이 비추는 출구 외에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현상)를 안겨주어서, 그 계획 이외의 다른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심지어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조차도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생 GPS를 단 하나의 목표에만 고정할 때 잘못된 목적지로 향하는 올바른 길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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