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스밀 지음
강주헌 옮김
김영사
p.183-187
현대 사회는 혁신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2019년이 저물어갈 때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는 구글 검색 엔진에서 32억 1,000만 회 검색되어, '테러' (4억 8,100만), '경제성장' (10억), '지구온난화' (3억 8,500만)를 가볍게 제쳤다. 우리는 혁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기대 수명이 100세를 훌쩍 넘기고, 인간의 의식과 기계를 융합하고, 기본적으로 무료인 태양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혁신이라는 제단 앞에 무비판적으로 무릎을 꿇는 태도는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되었다. 첫째, 오랜 시간을 두고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며 연구했지만 실패한, 근본적이고 중대한 탐구를 무시한다. 둘째, 우리가 더 나은 고차원의 행동 방침이 있다는 걸 아는 경우에도 수준 낮은 관습적 행위를 종종 고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고속증식로(fast breeder reactor)는 소비하는 양보다 많은 핵연료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된 고속증식로는 혁신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여겨진다. 1974년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은 2000년쯤에는 미국에서 소비하는 전기의 90퍼센트를 고속증식로에서 생산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제너럴 일렉트릭의 예측은 널리 만연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일 뿐이었다. 1970년대에 프랑스, 일본, 소련, 영국, 미국의 정부는 모두 증식로 개발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그러나 고비용, 기술적 문제, 환경적 염려 등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은 그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소규모로 투자한 독일과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국, 인도, 일본, 러시아는 지금도 실험용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 전체가 약 60년 동안 현재의 가치로 1,000조 달러 이상을 고속증식로에 쏟아부었지만 아직까지 상업적으로 실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전망은 장밋빛이지만 아직 상업적 염려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혁신들로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자기부상열차, 열핵 에너지가 있다. 특히 열핵 에너지는 혁신적 성취가 오히려 후퇴한 가장 악명 높은 예일 것이다.
실패한 혁신의 또 다른 범주 -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행하는 것 - 는 일상의 습관부터 이론적 개념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두 가지 짜증스러운 예를 들어보자. 하나는 서머타임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항공기 탑승이다. 서머타임을 적용하더라도 실제로는 어떤 것도 절약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반년마다 일광 절약 시간(daylight saving time)이란 이름으로 서머타임 제도를 계속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은 항공기 탑승에 1970년대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현재의 비효율적 방법 대신 탑승 시간을 대폭 줄이는 방법이 많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예컨대 승객을 역피라미드 방식으로, 다시 말하면 앞쪽과 뒤쪽에서 동시에 탑승시키면 병목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혹은 아예 좌석 지정을 폐지하는 방법도 탑승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왜 우리는 국내총생산, 즉 GDP로 경제성장을 측정하려는 것일까? GDP는 한 국가에서 한 해 동안 거래된 재화와 서비스의 총가치에 불과하다. 삶이 더 나아지고 경제가 성장하면 GDP도 당연히 증가하지만, 국민과 환경에 나쁜 일이 닥칠 때도 GDP는 증가한다. 알코올 판매량이 증가해서 음주 운전이 늘어나 사고가 빈번해지고, 그에 따라 다치는 사람이 많아져 응급실이 붐비고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이 늘어나더라도 GDP는 증가한다. 열대 지역의 불법 벌목이 증가해 숲이 파괴되어 생물다양성이 줄어들더라도 목재 판매량이 증가하면 GDP는 올라간다. 우리는 이런 모순을 잘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GDP 성장률이 높기를 바라고, 그 출처와 상관없이 높은 성장률을 거의 숭배한다.
인간에게는 많은 불합리한 편애성이 있다. 우리는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혁신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하면서 실질적인 혁신으로 공통된 문젯거리를 바로잡으려 하지는 않는다. 왜 우리는 하이퍼루프 열차(hyperloof train)와 영생 같은 환상을 머릿속에 그리면서도 항공기 탑승 문제는 개선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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