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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착각

호학당 이야기/책과 밑줄

by 호학당 2021. 12. 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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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착각

닉 채터 지음

김문주 옮김

웨일북

 


 

 

 

p.169-174

간단한 시험이 또 하나 있다. 나에게 사과 또는 오렌지를 보여주고 어느 쪽을 거부할지 묻는 것이다. 이제 이번에는 내가 거부를 덜 하는 쪽을 합쳐보자. 그러면 그쪽이 확실히 내가 선호하는 과일이지 않을까? 처음 경우에 내가 대부분 사과를 선택하고(이는 사과를 선호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 경우에 대부분 사과를 거부한다면(이는 오렌지를 선호함을 의미한다) 우스운 일일 것이다. 일관되게 선택할 뿐만 아니라 거부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선호의 개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심리학자 엘다 샤퍼(Eldar Shafir)와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이러한 모순적인 패턴이 실제로 벌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지(아주 좋은 속성과 아주 나쁜 속성 모두)와 중립적인 선택지(모든 속성이 중간인 것)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요청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극단적인 부모(아이와 매우 친밀함,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함, 평군을 상회하는 소득, 그러나 출장이 잦음, 약간의 건강상 문제)'와 '평범한 부모(아이와의 적당한 관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회생활, 평균 수준의 소득과 근무시간, 건강)' 사이에서 양육권을 결정한다고 상상했다. 어떤 부모에게 양육권을 부여할지 선택하라고 요청받자 대부분의 사람은 극단적인 부모를 선택했다. 그러나 어떤 부모에게서 양육권을 박탈할지 선택하는 질문에서도 대부분 극단적인 부모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적인 패턴은 여러 연구에 걸쳐 등장했다. 선택지를 고르라는 요청을 받을 때 사람들은 '평균'보다는 더 자주 '극단의 조합'을 선택했지만 선택지를 버리라는 요청에도 역시 '극단의 조합'을 '평균'보다 더 자주 선택했다. 분명 사람들은 그 똑같은 부모가 최고의 선택지이자 최악의 선택지임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샤퍼와 트버스키는 우리가 선택할 때 기존에 존재하는 선호를 '표현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보았다. 실제로 이들은 이 세상에 선호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 대신에 우리가 하는 행동은 즉흥적인 것, 다시 말해 일이 흘러가는 대로 선호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즉흥화는 여러 형태로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 또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정한 내용을 제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가지 당연한 일은 어느 한 선택지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몇 가지 이유를 함께 모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찬성하는 이유일까, 반대하는 이유일까? 샤퍼와 트버스키는 이러한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선택은 그 결정이 어떻게 묘사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선택지를 고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대부분은 이런저런 것을 선택하는 이유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며, 이러한 이유들은 어느 한 선택지를 선호하는 긍정적인 이유인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선택지는 가장 강력한 긍정적인 이유(예로 아이와 매우 친밀함)를 지니며, 그렇기에 채택된다. 반면에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서 하나를 거부하도록 요청받는다면, 부정적인 이유들을 찾아내어 어느 한 선택지나 다른 선택지를 탈락시킨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지 역시 가장 강력한 부정적인 이유(예로 출장이 많음)를 가지므로, 그 극단적인 선택지는 지워진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이 현상, 즉 완전히 똑같은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현상을 매우 통제된 환경에서 살펴보기로 했다. 실험의 참가자들은 도박들 중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실험할 때마다 도박에서는 금전 보상과 관련 있는 어떤 숫자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도박을 선택하기 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도박으로 만들어진 보상 종류를 보고, 그 다음에 그것을 선택할지 결정하게 된다. 이를테면 어느 도박꾼 어깨 너머로 슬롯머신을 당기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그다음에 나도 같은 도박을 할지 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사람들은 실험마다 컴퓨터 화면에서 진행되는 두세 개의 도박을 볼 수 있었고, 여러 다른 위치에서 숫자들의 '흐름'을 보았다. 실험의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어떤 유형의 도박 혹은 어떤 숫자의 흐름을 선택할 것인가?

사람들은 위의 그림에 해당하는 도박에서 가능한 성과에 해당하는 연속된 숫자들을 지켜보았다. 도박들은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의 성과 또는 협소한 범위의 성과를 낼 수 있었고, 두 유형의 도박 모두에서 평균적인 이득은 완전히 똑같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도박을 선호할까? 사람들에게 폭넓은 성과를 내는 도박과 협소한 성과를 내는 도박 중에서 선택하라고 요청한다면 이들은 이 선택에서 긍정적인 이유 즉 '대박'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폭넓은 성과를 내는 도박을 선호할 것으로, 경제학 용어로는 '위험 추구' 행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폭넓은 성과를 내는 도박과 협소한 성과를 내는 도박 중에서 제거하라고 요청한다면 사람들은 '쪽박'과 같이 거절할 이유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러나 폭넓은 성과를 내는 도박 역시 커다란 손실을 만들어낼 수 있고, 따라서 똑같은 그 선택지가 이번에는 거부당하면 이를 '위험 회피' 행위라고 부른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다. 사람들은 처음에 세 가지 종류의 도박을 제안 받는데(폭넓은 성과를 내는 도박 두 가지, 협소한 성과를 내는 도박 한 가지), 여러 차례에 걸쳐 도박판이 진행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러고 나서 그중 한 가지 도박을 제거하라는 요청을 받고, 그 후에는 두 가지 남은 도박이 내놓는 더 많은 표본에 노출되고 나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는다. 예상했듯이 결과의 전형적인 패턴은 사람들이 특히나 1단계에서는 협소한 도박보다는 광범위한 도박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지만, 2단계에서는 광범위한 도박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순간에 사람들은 위험을 꺼리지만, 그다음 순간에는 받아들인다. 이것이 내면의 현자에게 조언을 구해서 나온 선택이라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즉석해서 만들어낸 선택이라면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어느 한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를 떠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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