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프로젝트 설계자

호학당 이야기/책과 밑줄

by 호학당 2025. 9. 1. 08:16

본문

프로젝트 설계자

벤트 플루비야, 댄 가드너 지음

박영준 옮김

한국경제신문

 


 

 

 

p.44-46

프로젝트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할 때는 프로젝트의 전체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조금 단순하긴 하지만, 효과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기획(planning)이고, 두 번째는 수행(delivery)이다. 산업 분야에 따라 용어는 조금씩 다르다. 영화 산업에서는 ‘개발과 제작’이라고 표현하고, 건설 분야에서는 ‘설계와 시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기본적인 개념은 똑같다.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행동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는 비전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할 멋지고 아름다운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이 비전을 충분히 조사하고, 분석하고, 실험하고, 세부 사항들을 검토한 뒤에 우리가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로드맵을 갖췄다고 자신감을 얻기까지 사고하는 과정을 기획이라고 한다.

기획은 대부분 컴퓨터, 종이, 물리적 모형 등을 이용해서 이루어진다. 그 말은 이 업무가 상대적으로 값싸고 안전하다는 뜻이다. 시간상으로 특별한 제약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기획 절차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별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행은 문제가 다르다. 수행 과정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단 이 단계에 돌입하면 프로젝트 자체가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2020년 2월에 할리우드의 한 영화감독이 실사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가정해보자. 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이후 닥친 팬데믹이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 프로젝트가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만일 감독과 그의 팀이 지금 대본을 쓰고, 스토리보드를 작성하고, 야외 촬영지의 일정을 정하는 단계라면(즉 ‘기획 단계’라면), 코로나19 팬데믹이 문제를 안겨주기는 해도 큰 재앙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진행 중인 업무는 대부분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막 시작됐을 때 그 감독이 200명이 넘는 제작진과 엄청난 출연료를 주고 섭외한 영화배우들을 이끌고 뉴욕 거리에서 이미 촬영을 진행하는 중이었다면? 또는 촬영이 모두 완료됐고 극장 개봉까지 불과 한 달이 남아 있다면? 극장들은 곧 폐쇄될 예정이며 언제 다시 문을 열지 알 수 없다. 만일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기획은 안전한 항구에 대피해 있는 것이고, 수행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로 위험한 항해를 떠나는 일과 같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소울> 등의 뛰어난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내놓은 전설적인 영화사 픽사(Pixar)의 공동 설립자 에드윈 캣멀(Edwin Catmull)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는 감독들이 영화 개발 단계에 몇 년의 시간을 보내도록 기꺼이 허락한다.” 물론 아이디어를 짜내고, 대본을 쓰고, 스토리보드 이미지를 작성하는 일을 거듭하는 데도 돈이 든다. 하지만 캣멀은 “그런 작업을 반복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렇게 훌륭한 업무 과정을 통해 풍부하고, 상세하고, 검증된 기획안이 숱한 실험을 거쳐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제작 단계로 넘어가면 그 모든 사전 작업 덕분에 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그건 필수적인 과정이다. 캣멀은 이렇게 말했다. “제작 단계에서는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기획 업무를 천천히 진행하면 안전하다. 게다가 천천히 진행하는 편이 사실 모든 면에서 더 유리하다. 픽사의 감독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다양한 선택지나 접근 방법이 저마다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복잡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테스트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기획에는 사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중요하고, 세심한 사고의 과정은 천천히 진행된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자기가 5분 동안 나무 한 그루를 베어야 한다면 처음 3분 동안은 도끼날을 갈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바로 그런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기획 단계에 더 많은 주의와 노력을 기울인다면 수행 단계가 순조롭고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라.’ 이것이 바로 성공의 비밀이다.


 

'호학당 이야기 > 책과 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능의 기원  (3) 2025.08.08
신뢰 이동  (3) 2024.12.14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의 비밀  (0) 2024.11.12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2) 2024.01.30
소비자의 마음  (4) 2024.01.23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