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p.46-47
지각심리학자인 리처드 그레고리(Richard Gregory)는 '허구'를 '허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허구와 사실을 서로 맞춰보고 대조함으로써 작가들은 진실에 가까운 근사치를 얻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인 견지에서 볼때, 상상으로 꾸며낸 허구는 사실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의 과정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직접 받아들이는 것들, 즉 일출과 일몰, 문, 사진이나 드로잉, 종이 위에 휘갈겨쓴 글씨들은 전혀 실재가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자체만 가지고서는 우리에게 실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이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상상력'을 빌어 해석해야만 한다.
모든 과학과 예술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문은 단순히 경첩에 매달려 있는 나무판이 아니다. 그것은 회전력과 크기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보기이고 또한 목재와 손재주와 실용적 목적이 결합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출구나 입구가 될 수도 있고 예술적인 디자인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이토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문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지각하도록 요구한다.
사진, 드로잉, 글 같은 것들은 잉크나 은으로 얼룩져 있는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이 그 이름에 값하는 하나의 실재로서 다시 태어나는 곳은 우리들 마음속이다. 그리고 그것의 탄생은 이것들이 상징하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이며 경험적인 느낌들을 재창조해낼 수 있는 우리들의 기술에 달려 있다. 그것들은 진실의 반지를 끼고 있는 허구다. 이 진실이란 우리가 우리 내부에 받아들여야만 '진실'이 되는 어떤 것이다. 생산적인 사고는 내적 상상과 외적 경험이 일치할 때 이루어진다.
댓글 영역